July 19th, 2010 by sangpil
Yash Misra의 새로운 신문 편집디자인 제안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오늘날의 방향성이 be as clear, straight forward, and comprehensible as possible에 초점이 맞추어 져 있다는 것.
장영재의 트위터 포스트에서 140자 이내의 핵심만 말해야 하는 트위터의 특징을 회의에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 또한 이와 같은 방향성을 가지는 것 같다.
어제 민수와의 대화에서도 언급된 것 처럼, Ted강연의 시간제한:During the talk: The talk must not go over the allotted time. Let them know how you’ll cue them when their time has run out, 포트폴리오나 특정 단체에 지원 혹은 공모하는 서식에서 보여지는 글자수의 제한이나 시간의 제한이라는 특성은 오늘날 사회가 갈수록 방대한 양의 정보 처리를 짧은 시간에 파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것.
여유가 없어지는 것. 할말만 하는 것. 목적에 충실한 것. 읽고 쓰는 것에서도 하루 하루 각박함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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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6th, 2010 by sangpil
시각화의 정의를 알고자 사전을 뒤적이는 중이다. Visualize에는 심상(心象)이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to recall or form mental images or pictures 라던가 to form a mental image of 라던가 to make perceptible to the mind or imagination 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이 의미를 포함한 시각화의 정의를 찾을 수 없다. 시각과 심상을 포한하는 단어가 어딘가 있을 듯 한데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어딘가 있겠지 싶으면서도 적절한 단어를 못찾을 지도 모른다는 이유 모를 불안감도 적지 않다. [ 구지 왜 찾고 싶냐고 묻는다면, 길게 설명하기 귀찮아서다. 길게 풀어 말할 수 있는데 왜 단어를 익히냐고 묻는다면 할말이 없다. 그냥 물한잔 떠주고 싶은 마음.]
왜 그런 불안이 들었는지 궁금히 생각해 보니 ’언어란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부단히 생각해서 개념을 활자에, 소리에, 문장에 불어 넣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 성실하게 우리말을 갈고 닦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늘날 처럼 외래어가 많은 시대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어떤 의미에서 한글이라는 언어의 운용에 있어 많은 부분을 상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어느 연구집단이 두개의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언어학적 실험을 하였는데, 예를들어 한국어로는 생각할 수 있었는데 영어로는 생각할 수 없는 사고가 있다’ 라고 아는 지인이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쓰는 언어에 따라서 원활한 사고가 있고 아닌 것이 있다는 이야기 였던 듯 하다. 언어는 그 나라의 수렴되는 사고들을 담은 그릇이 아닌가 싶었다.
오늘도 강단에서, 사무실에서, 술자리에서 숱한 영어단어들이 쏟아진다. 경솔하게 한국말로 옮기느니 차라리 영어를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 되면서도, 기분이 다소 찜찜하다. 그렇다고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데 사력을 다하는 것도 탐탁치 않다. 한글을 쓰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져가지 않는 단순히 의미적으로 번역된 단어 또한 찝찝하긴 마찮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옮긴 듯 해도 낯설고 부담스러운 단어들이 너무 많은 듯 하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영어로 읽는게 쉽게 받아들여질 때가 생각보다 많다. 번역서적을 두고 번역가를 탓하던 적이 많은데, 이것이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Design, Programming, New media, Visualizing Data. 내가 공부하고 더 파고 싶은 것 들이 이런 것 들이다. 나보고 어쩌라는건지. 지금은 그냥 한국어를 쓴다는 사실이 짜증난다. 한글이라는 기발하고 명쾌한, 비교적 새로운 언어를 써서 좋긴 한데, 쓰는 사람이 너무 적다.
그냥 영어공부 열심히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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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3rd, 2010 by sangpil
정보 시각화는 통계학과 시각 디자인의 관점을 넘나들고 있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시각화 작업 시 수학적(혹은 수치적) 정확성과 시각적 커뮤니케이션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점이였다(general vs. its mathematical meaning). 아마도 이 경계 근처에서 내 사고의 영역을 좁힐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이 들었다.
정보디자인 역사에서 중요한 몇몇 작업들을 보면 위의 갈등들이 두드러 지는데, 예를들어 나이팅게일의 Polar area diagram을 살펴보면 여기서 사용된 면적은 실제 면적이 아니라 반지름을 기준으로 한 비율로 그려져 있다.

이를 실제 면적비로 변경한 Henry Woodbury의 작업(아래)을 보면, 원본과 큰 차이를 느끼게 되는데, 사실 이 문서는 영국정부에 나이팅게일의 활동(환자 식단을 변경하여 병원 내 사망자 비율 감소를 보여줌)이 중요하다는 점을 피력하는데 효과적으로 쓰쓰였다고 한다. 사실 나이팅게일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 부터 수학 잘 하기로 유명했고, 영국 왕립 통계 연합(Royal Statistical Society) 최초의 여성맴버임을 토대로 추측해 보면 의도적으로 통계 도식의 수치적인 정확성 보다 내용의 전달을 중시하여 이와같이 그리지 않았는가 싶다.

이를 보면 특정 주제의 값을 수학적 다이어그램의 어느 요소에 대입하느냐에 따라 시각적으로 의미를 강조 또는 축소할 수 있게 되는 샘인데 통계학적 관점에서 보면 다소 불편한 이야기 인 듯 하다. 이 두 영역의 관점이 빚어내는 경계 혹은 논쟁의 영역에서 내 관심의 방향을 이야기 한다면, 아마도 의미전달(다소 그것이 과장되더라도)에 중심을 둔 시각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통계학에서 바라보는 수치의 정확한 표기가 완전히 무시되는 것은 아니고, Flow map이나 파이차트 등 여러 형식의 도식을정의, 구현 및 이해를 해 보며 각 패턴이 가지는 데이타와 형태의 연관관계를 찾고 이를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기능(시각적으로는 GUI)을 추가해서 커뮤니케이션에서 실제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 판단해 보고 싶다.
흠. 그러니까 아마도 각각의 정보 도식화 패턴의 정의를 공부하고 이것을 구현함으로서 그 패턴을 이루는 요소들을 정리, 그리고 각각의 패턴들을 섞거나 요소의 일부분을 조금 다르게 풀어서 베리에이션을 만들고 그걸 설문해 보거나.. 해서 정리한 후.
이를 토대로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한 의사소통에서 어떤 역활을 할 수 있을지 생각? 이런 느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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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2nd, 2010 by sangpil
세상일은 왜 이리 복잡하게 느껴질까. 그걸, 그려볼 수는 없을까.
내가 생각하는 문제들이 각각 얼만큼씩 어떻게 차지하고 있는지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의 출처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내 안에서 나온 것이라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던질 수 있지는 않을까…
[ 가리고 싶은 부분은 다 가리고 보여주더라도 ] 그것이 타인과 공유된다면, 조금은 내가 혹은 우리가 끌어안고 있는 소통의 문제들을 어루만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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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1st, 2010 by sangpil
She said “The best way to make better the world is being honest with each other.”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정직해 지는 것. 나도 부족하지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그런점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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